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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6/26] 6.25 (4)

6.25

by [시국을 논함]
어제 학교에 가는데 평소와 다르게 이상하게 버스가 막혔다.
동대문 운동장 앞에서 '보수'단체들이 시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 6.25구나'. 나는 그제서야 그날이 6.25였다는걸 깨달았다.

어릴때 6.25는 정말 중요한 날이었던 것 같다.
'도덕'시간에 반공교육을 받으며 자랐으니까 늘 북한에 대한 적개심과 두려운 마음이 가득했다.
반공관련 글짓기나 포스터 그리기도 6.25를 전후해서 여러번 열심히 했을 것이다.
상은 받지 않은 것 같아 다행이다.

대학생활을 거의 다 지나보내고 졸업을 바라보는 지금은 어떤가.
솔직히 그 '보수단체'의 시위를 보면서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6.25 시대에 살고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태극기를 흔들며 좌파를 척결하자고 한다.
좌파가 무엇인지 한미동맹이 정말 어떤 것인지 생각해보고 저러는 것일까?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생각과 행동이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고 폄하하고 끝날 수 없는 문제다.
6.25의 고통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가혹한 것이었으니까.

한때는 외할아버지에게 대들면서
조선일보는 나쁜 신문이니 봐서는 안된다고 핏대를 올리고 주장할만큼 한심했던 시절도 있었다.
어른들과 싸워봤자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알게 되었을 즈음
외할아버지가 6.25에 참전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교사를 하다가 훈련도 제대로 못 받고 최전방에 끌려갔고
바로 곁에서 동료가 말을 걸다가 총에 맞아 죽는 것도 보았다.
모든 물품과 식량이 부족해서 식사시간마다 서로 싸우느라 난리였다.
외할아버지는 다행히 병이 나서 전쟁터에서는 빠져나왔다.
다시 교사로 근무하게 되었는데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국군과 인민군이 서로 밀고 당기고 하는 통에 사람들의 이념도 같이 바뀌어야 했다.
인민군이 점령할때 교사를 하던 외할아버지는 다시 국군이 내려오자 빨갱이로 몰리게 되었다.
하지만 그때 그 누가 공산주의가 뭔지 알았겠는가. 외할아버지는 그냥 교사를 했을 뿐이다.
그런데 다행히 평소에 잘 알던 사람이 저 사람은 그런 사람 아니라고 변호해주어 살게 되었다.
만일 그 자리에 그 사람이 없었다면 외할아버지는 바로 처형당했을 것이다.
수십명이 빨갱이로 몰려 한 자리에서 즉결 처형되었다. 말 한마디에 사람이 개처럼 죽어갔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6.25때 전쟁터에서 죽는 것도 문제지만 어처구니 없는 이념문제로 학살된 민간인들이 부지기수였다.
더구나 전쟁 이후의 폐허 속에서 하루하루 먹고 살기는 또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 지옥의 구렁텅이에서 살아남았던 사람들이 그때를 잊을 수 있을까.
삶과 죽음이 한끝 차이로 뒤엉켜 늘 한 자리에 있었던 무서운 시절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 거리에 나온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애틋하다.

세대별로 특징을 논한다면 그 속에 속한 계급의 문제가 흐릿해질 수 있다는 문제도 있다.
하지만 계급적 위치와 상관없이 특정 세대가 비슷한 모습을 보이는 경우도 분명 존재한다.
바로 6.25세대가 그렇다.
6.25를 직,간접적으로 겪은 사람들은 북한을 대하는 태도, 미국을 대하는 태도에서 거의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그들이 대한민국을 만들어왔다. 그러나 그들의 영향력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6.25를 겪은 사람들은 새로 생겨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은 '보수'세력이 아무리 집회를 하고 목소리를 낸다고 해도 솔직히 그 영향력은 미미하다.
우스꽝스러워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민주국가에서 어떤 의견이든지 말할 권리가 있다. 그들의 목소리도 분명 들어주어야 한다.
그 아픔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미래로 나아가야 할 정부가 그들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면 큰 문제다.
6.25는 이제 끝났으니까.
그리고 다시 6.25와 같은 슬픈 일이 없도록 해야 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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